2006년 01월 09일
<야수>, 이런저런
1. 어쨌든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2. 나는 남자들의 자기연민과 비통함이 흘러넘치는 영화를 꽤 좋아한다. 정서적으로 동화되거나 적극적으로 껴안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어쨌든 '남자 영화'란 내게 SF 영화를 볼 때와 같은 쾌감을 준다. 생각해 보지 못했고, 상상해 보지 못했던 그들만의 세계를 탐구하는 기분이랄까. 그래, 그대들도 이 비극적인 세계를 살아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 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차라리 견디기 힘든 것은, 여성들을 이해하는 척 다정하게, 또는 쿨하게 굴면 마초적 사고방식을 위장하는 영화들. 그래서 나는 느와르와 웨스턴 영화, 홍콩영화들을 즐겁게 볼 수 있지만, 여성의 쓸쓸한 삶을 서정적으로 그린답시고 젠체하는(그리고 왜곡, 미화, 전형화하는) '일부'의 감상적 영화들은 못 봐주겠단 말이지.
3. 그건 그렇고, 그리하여 홍콩 영화와 청춘시절을 보냈다거나 홍콩 느와르의 자뻑 가득한 비장미를 좋아한다거나, 할리우드로 넓히면, 마이클 만의 팬이거나 하다면, 즐거워할 만한 영화. 영화라면 모름지기 미남 배우가, 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4. 그동안 두 주연배우의 지나친 영화 자랑과 우애 과시를 보며 "오버 아니야?"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위선은 아니었던 듯. 그들은 진심으로 <야수>를 옹호하고 있었으며, 완전히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역할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경험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권상우는 결코 자신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신에 대해 좀 더 높이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5. 시나리오의 많은 부분, 특히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을 설명해 주는 전반부가 대폭 잘려나간 덕에 캐릭터가 얇아진 것은 사실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오호라, 라고 생각했는데. 과정이야 어찌됐든 개봉 영화는 결과로 평가받는 것.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재미있었다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