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얼굴도 개성, 오달수의 매력



오달수. 이제는 친숙한 이름입니다. 이름만으론 가물가물해도 얼굴을 마주 하면 딱 아실 거에요. <올드보이>에서 장도리에 이빨 뽑히던 그 괴악한 표정. <친절한 금자씨>에선 또 웬걸, 소심다감한 빵집 주인이라니. 화려한 케이크와 도무지 맞지 않는 외양이었지만 그게 또 색다른 효과를 일으켜 줬더랬죠.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저뿐이겠어요. 박찬욱 감독의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이후 그의 행보는 빠른 속도로 넓어지고 있잖아요.

그가 가장 바빴던 건 2005년 봄.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이 함께 개봉하던 날이었지요. <주먹이 운다>에선 복서 최민식의 과거 동료로, 이병헌에게 무기를 건네주던 러시아어 유창한 무기밀매 조직으로 동시에 등장했었잖아요. 그 직전 <마파도>에선 두 남자가 마파도를 찾아가는 원인이 된 문제의 로또에 당첨된 건달로 등장했었구요. 그 때여기저기 인터뷰도 제법 나왔어요. 개성파 조연으로 불리면서 이름도 얻었구요. 그러나 그 때, 막상 그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던가봐요. 잠깐 쉬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를 처음 영화계로 이끈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외에는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았었죠. 그리고 반 년이 넘었어요. 2월 마지막 주에 선보이는 <음란서생>에서 한석규, 이범수의 캐릭터 못잖게 강렬하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3월 개봉 예정인 <구타유발자들>에선 이문식 씨와 더불어 여러 주인공들 중 가장 묵직한 캐릭터를 선보이구요. 어느 샌가 영화의 중심에 가까워졌요. 비중 면에서, 연기의 폭에서도, (아마도) 개런티 면에서도.

저는 아직 그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해 보지 못했어요. 지난 1월 찬바람 쌩쌩 불던 강원도 산골짝 현장을 찾았다가 몇 마디 인사를 건넨 게 전부였죠. 처음엔 그를 찾기도 쉽지 않더군요. 안 그래도 모든 사람이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지라 누가 누군지 구분이 어려운 겨울 현장. 두툼하고 허름한 잠바때기(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를 걸치고, 그보다 더 허름한 바지를 입고, 가장자리에 털달린 깜장 고무신을 신고 강가를 비척비척 걷던 모습. 깊은 얘긴 나누지 못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어요. 장소를 옮길 때 의자와 소품들을 양손에 끌어 안고 능숙한 짐꾼처럼 움직이던 모습과, 그리고,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정말 커다란 얼굴 또한 강렬했죠.

본인도 그 사실을 스스럼없이 말하더군요. 작년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내가 얼굴이 남보다 크다. 오페라 하우스 2층에서도 잘 보인다더라.(웃음) 점도 다 보인다더라. 후배들이 약 올린다고 하는 말이 있다. '오페라 하우스 2층에서도 보이는 머리 큰 인간이 어떻게 영화만 찍으면 머리가 작게 나오냐? 불가사의다'라고.” 그의 말처럼 미스테리에요. 얼굴도 크고, 점도 뚜렷하고, 개성이 너무너무 강해서 캐릭터를 압도해 버릴 것 같은데, 어느 영화에 섞이든 영화에 녹아들고 묘하게 그 캐릭터와 어울린단 말이죠. 처음엔 주로 깡패 건달이었지만 지금은 '정신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구타유발자들>의 동네 토박이로, <음란서생>에선 음란서의 배포를 맡은 갓쓴 선비로. 

작년을 남자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해라고들 했죠. 그 중심엔 황정민과 정재영, 조승우 등이 있었구요. 올해의 지형도를 미리 그린다면, 이른바 '개성파'(이 말이 참 싫지만) 배우들의 해가 아닐까요. 연극판에서 경력과 연기력을 갈고 닦아 영화로 옮겨 온 행보는 대개 비슷하지만, 오달수는 기존의 어떤 배우들과도 또 다른 길에 있어요. 이전이었다면 잠시 와글와글 주목은 받았으되 결국 개성있는 조연으로 그치기 쉬운 인물.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영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됐네요. 이유야 어쨌든 반가운 일이죠. 영화에서 늘상 꽃미남만을 보고픈 게 아니고, 어린 꽃미남이 할 수 없는 역할이 있으니까(아쉬움이 있다면 여배우들에게도 그만큼의 개성이 허락되었으면 한다는 것. 언제까지 여배우는 꽃이어야 할까요...) 그의 비중이 커져갈 수록 어떤 모습을 더 보여 줄지 궁금해져요. 언젠가, 어쩌면 조만간, 그를 만날 수 있겠죠. 그 땐 그에게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네요.

by pinkmoon | 2006/02/07 11:58 | 두런두런 영화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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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보노보노 at 2006/02/07 12:05
꼭 만나주세여...^^
Commented by 향이 at 2006/02/07 14:45
오달수씨는 의외로 수줍음도 많은 분이시죠. 막공기념으로 모자를 선물했던적이 있는데 머리에 안맞다며 다른분걸로 바꿔가시면서 너무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Commented by Joyee at 2006/02/07 16:03
너무 좋아하는 배우
Commented by 화이트칼라 at 2006/02/07 16:18
마파도에서 착하다가 로또땜시 확 눈 돌아가는 그 캐릭터 맞죠?
Commented by 도요새 at 2006/02/08 01:06
설마, 이름만 들어도 바로 바로 기억되는 분입니다. 알듯 모를듯한 매력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 특유의 색(말투나 연기나 얼굴이나)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되다가도 알고보면 정말 핑크문님 말처럼 어느 영화든 잘 스며드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주/조연 자꾸 나누는 게 뭣해도...전 이런 조연배우분들께 더 애착이 가요~
Commented by 비누인형 at 2006/02/08 11:45
와.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이시라.. 흐흐.

오달수님 연극하셨던 엘리베이터도 너무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주먹이 운다에서 양파 대사도 직접 만들어 가셨다는 얘기도 즐겁고,
인상은 좀 무뚝뚝하신데, 의외의 재치가 있으신 것 같아요 :)
Commented by pinkmoon at 2006/02/08 17:06
보노보노님/ 네, 그렇게 되면 좀 더 생생한 소식을 알려드릴 수 있겠죠? :-)

향이님/ 수줍음많고 조용한 면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모습 보셨다면 더 친숙하게 느껴지시겠어요.

Joyee님/ 은근히 팬이 많더라구요.

화이트칼라님/ 네 맞아요. 로또 도둑맞은 이후에 살벌하게...

도요새님/ 저는 처음에 오광록 씨와 너무 헷갈렸답니다. 지금은 어떻게 헷갈릴 수 있나 싶은데 말이죠.

비누인형님/ 아 연극도 보셨군요. 저도 보고 싶었으나, 도대체 연극 본 지가 언제인지...(먼산)
Commented by 몽실 at 2006/02/14 19:22
내가 가장 오래전에 오달수님을 봤구나. ^^ 부산 연희단 거리패 시절의 오달수 아저씨.^^ 아마 1993~4년 경인가? ㅎㅎㅎ
Commented by pinkmoon at 2006/02/15 22:35
몽실/ 그런 행운을 잡았다니! 나중에 얘기 들려주라.
Commented by 미친당근 at 2006/02/26 21:13
갠적으로 머리크지만 좋아하는 배우... 정감이 갑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카리스마가..
Commented by 행복한보헤미안 at 2006/02/27 23:32
영화잡지'프리미어'에서 특별칼럼 나오더라구요...ㅎ 재수하다가 우연히 연극판에 들어갔다고.ㅎ 꽤 자기 연기철학이 뚜렷한 연기자 같아요.^^
Commented by 혈류 at 2006/06/03 06:53
아....... 약방의 감초처럼 참..... 연기가 인상에 남더군요.... 개인적으로 올드보이에서 나왔을 때 참 인상깊었는데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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